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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14:27    조회수 : 22199    추천수 : 27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약품 가격을 업체 마음대로? - 미국의 Medicare를 보라


며칠 전 있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회동에서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삼성측의 요구가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현재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사이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약품 가격을 업체 자율에 맡겨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자칫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요즈음 촘스키(Noam Chomsky) 교수가 쓴 “Requiem for the American Dream”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득권층이 재산과 권력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려고 사용하는 열 가지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책입니다.
여기에 Medicare라는 사회적 보험 프로그램과 관련해 업계 자율로 결정되는 약품 가격이 미국 서민들의 생계에 얼마나 큰 부담을 떠안기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나옵니다.
만의 하나 정부가 삼성측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미국에는 사회 전체를 커버하는 공적 건강보험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수혜대상으로 하는 Medicare와 가난한 사람들을 수혜대상으로 하는 Medicaid만이 제한적인 사회적 보험을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등 스스로 건강보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돈 없는 사람이 아프면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촘스키 교수는 Medicare와 Medicaid의 수혜자가 사용하는 약품 가격에 대해 정부가 협상을 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업체가 스스로 결정하는 약품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서민들이 무거운 약값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협상을 할 권리를 갖지 못하게 만든 것은 당연히 제약업체들이 벌인 맹렬한 로비활동의 성과였겠지요.
미국의 거대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벌이는 무시무시한 로비활동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직 보훈처(Veterans Administration)만 예외적으로 약품 가격을 협상할 권리를 갖는데, 이 덕분에 제대 군인들은 낮은 약품 가격의 혜택을 받는다고 합니다.
촘스키 교수는 왜 Medicare와 Medicaid와 관련해서는 서민들이 낮은 약품 가격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만들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서민들의 희생하에 거대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배를 불리게 만들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대 내가 조사해 보니 Medicaid의 경우에는 정부가 약품 가격을 협상할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연방정부가 협상할 수는 없지만 주정부는 협상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Medicaid는 터무니없이 높은 약품 가격이라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더군요,
결국 문제는 Medicare에 국한되어 있는데, 연금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는 수없이 많은 노인들이 바로 그 피해를 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난 3월 26일자 CNN의 보도에 따르면 노인들에게 가장 많이 처방되는 20가지의 브랜드 약품의 가격이 지난 5년 동안 물가상승률의 거의 10배에 이르는 속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오랜 동안 주시해온 맥캐스킬(Claire McCaskill) 상원의원은 어떻게 똑같은 약품의 가격이 매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오를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가리켜 “만들어진 위기”(Manufactured Crisis)라고 불렀습니다.
제약업체의 로비에 놀아난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위기라는 말이지요.

트럼프(D. Trump) 역시 대통령 선거 즈음에는 이것이 문제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민주당 의원들이 Medicare와 관련해 정부가 약품 가격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제약업체의 로비를 물리치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일 테지요.

이재용 부회장의 그날 발언은 소위 제약바이오산업이라고 부르는 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만의 하나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요구에 순순히 응해준다면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재현되겠지요.
미국의 제약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약값을 올리는데 우리나라 제약업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약품 가격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없어져야 할 규제 중 하나로 보는 보수언론의 태도입니다.
물론 정부가 약품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 Medicare의 예에서 보듯,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최소한 약품 가격을 협상할 권리를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규제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이윤추구를 위한 기업의 요구가 신산업 육성 등의 허울을 쓰고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를 당장 철폐해야 한다는 데는 한 점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과 관련된 약품 가격까지 기업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원색적 욕심은 선의의 규제철폐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제약업계는 그 본질상 연구개발투자에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데, 이와 관련해 정확한 원가계산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약품 가격 인상의 구실을 찾기 위해 원가 부풀리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수익률의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이란 명분으로 약품 가격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동훈학생,
(2018/08/09 17:29)

대다수 제약업계의 창립 이념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 증진 이라고 되어 있던데 실상 그들의 횡포를 볼 때마다 사람 목숨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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